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 대한민국 (문단 편집) == 히트 == 건전가요들은 으레 음반의 맨 끝에 울며 겨자 먹기로 쳐넣었기 때문에 히트 여부에 상관없이 천덕꾸러기 신세였지만 '아! 대한민국'은 대중적으로 크게 인기를 끌었다. 이것은 정책적으로 밀어 준 것 외에 정수라의 1집에 수록이 된 사실 또한 크게 작용을 했다. 대중가수의 정식 앨범에 건전가요가 메인 트랙으로 올라갔다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었다. 그런데 건전가요 모음집보다 앞서서 발매가 됐던 정수라의 오리지널 1집에는 이 곡이 없다. 나중에 1집을 '바람이었나/아! 대한민국'의 타이틀로 재발매 하면서 B면의 타이틀로 '아! 대한민국'을 추가한 것이다. ~~리패키지 앨범도 아니고...~~ 여기에 실린 곡은 정수라의 독창 버전이며, 정수라의 매니저가 손을 써서 원래 같이 불렀던 장재현을 배제 했다는 후문이 있다. [[정수라]]의 곡은 이듬해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당시에 가장 공신력이 있던 가요 순위 프로그램인 [[KBS2]] [[가요톱10]]에서 골든컵을 수상할 정도로 온 국민의 애창곡이 되었다. [[조용필]]의 '못찾겠다 꾀꼬리' 때문에 골든컵 제도가 생기지 않았더라면 이후로 얼마나 더 해먹었을지 모를 일이다. 상업적으로도 약 4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큰 성공을 거두었고, 정수라는 이 인기를 바탕으로 마침내 1984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당당히 10대 가수의 반열에 들 수 있었다. 수년 후 다가올 커다란 국제행사들을 앞두고 들떠 있던 국내의 분위기 속에서 이 노래는 정부의 독려가 더해져 각종 행사에 쓰이고 운동 경기의 응원가로 불리는 등 여러 해 동안 끊임없이 들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관공서에서는 공적으로 제작한 건전가요 모음집을 많이 사용했으므로 일반 공연이 아닌 행사에서는 주로 장재현과 함께 부른 듀엣 버전이 사용이 됐다. 지금에 와서야 '아! 대한민국'이 정수라의 노래로 알려져 있지만 앞서 밝혔듯이 장재현과 듀엣으로 부른 것이 먼저였다. 게다가 정수라, 장재현 듀엣 버전도 최초는 아니며, 원래는 [[민해경]]과 [[김현준#s-9]]이 듀엣으로 부른 것이다. 두 사람이 같은 회사 소속으로 듀엣 활동을 하는 걸 눈여겨 보던 정부 기관에서 의뢰를 하여 녹음을 하고 공연활동을 했으므로 역시 건전가요로 시작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음반으로는 1983년 3월에 발매한 민해경의 베스트 앨범에 처음으로 들어갔고, 몇달 뒤에 김현준의 1집을 재발매 하면서 추가로 넣기도 했다. / 이 민혜경 대표곡모음 앨범은 2가지 종류가 있고 한 버전은 2번 트랙이 슬픈약속(경음악), 다른 버전은 2번 트랙이 아 대한민국이다. 정황상 한창 뜨는 노래를 굳이 빼는 형태의 재반을 발매할리가 없으니 슬픈약속(경음악)이 수록된 버전이 3월 출시, 아 대한민국이 수록된 버전이 김현준1집 재발매 시기와 함께 재발매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한 근거가 없어 불분명한 점이 있다. 하지만 일명 '요정 사건'이라 불리는 불미스런 일로 방송 출연을 금지 당한 민해경이 일본으로 떠나 버리는 바람에 제대로 활동을 못하고 묻혀 버려서 지금은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아! 대한민국'과 같은 시기에 역시 민해경과 듀엣을 했던 '내 인생은 나의 것'은 가요톱텐에서 4주 1위를 할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얻었지만 청소년에 악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방송금지곡이 됐다. 이 곡은 엄연히 김현준의 음반에 있던 곡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는 지명도 높은 민해경의 곡으로 알려져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